지식의 창희수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 민족의 발자취를 따라서
충남 삽교고등학교 1학년 원희수 기자  |  ehdlf10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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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호]
승인 2017.09.07  14:3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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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첫 방학은 여느 때와 같이 흘러가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었다. 잠시라도 어디론가 떠나거나 좀 더 뜻깊은 시간을 갖길 바랐다. 그러던 중 교실 앞 게시판에 공지가 하나 붙은 것을 보았다. 충남교육청에서 우리 역사와 문화, 그리고 옛 음악 등 우리 민족의 발자취를 찾아볼 수 있는 ‘인문학 기행단’을 모집한다는 게시물이었다. 즉시 신청서를 제출했고, 운이 좋게도 1기 인문학 기행단으로 선발되어 10박 11일의 여정을 떠날 수 있었다. 지난 7월 20일~30일 동안 펼쳐진 일들을 함께 나누어 본다.

 

1일차: 안중근 의사의 흔적을 느껴보기 위해 뤼순감옥을 찾았다. 뤼순감옥의 한편에서는 당시 사람들이 받아야했던 처참한 고문의 현장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안중근 의사가 머물렀던 방은 뤼순 감옥 관계자가 공사 중이라며 내부를 보지 못하게 막아 아쉽게도 살펴볼 수 없었다. 그래도 당시 사람들의 열악했던 환경을 생생히 마주해 보았기 때문에 큰 아쉬움은 없었다. 안중근 의사께서 이 삭막한 곳에서 지내다 돌아가셨다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2일차: 단동의 압록강 철교를 둘러본 뒤, 유람선을 타고 북한 사람들이 지내고 있는 호산촌을 둘러볼 수 있었다. 비록 유람선을 통해 멀리서만 바라볼 수 있었지만, 이렇게라도 갈 수 없는 곳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같은 민족이 살고 있는 곳임에도 갈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렇게 한참 유람선을 타고 가던 중, 작은 크기의 북한 배가 곁으로 다가와 북한의 담배나 주류, 포장 김치를 중국 가이드를 통해 판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한 민족이 분단된 현실에 가로막혀 직접 소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며 마음 한편이 묵직해졌다. 언젠가는 물 위에서가 아닌, 평평한 땅 위에서 서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하고 바라는 계기가 되었다.
 

 

   
▲ 장군총

3일차: 장군총, 광개토대왕릉비, 오회분을 둘러보았다. 장군총은 413∼490년 사이에 축조된 것으로 고구려 20대 왕이자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능이다. 독특하게 돌계단모양으로 되어있다.
광개토대왕릉비의 크기는 정말 거대했다. 높이는 6.39미터라고 했다.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아들 장수왕이 세운 비석으로, 네 면에 광개토대왕의 업적이 새겨져 있다.
이후 오회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투구 모양의 고분 5기가 동-서로 길게 배치되어 있어서 오회분(五盔墳)이라 부른다고 한다. 회(盔)는 투구(쇠로 만든 모자)라는 뜻이다. 오회분 5호묘에서는 사신도 벽화를 볼 수 있었다. 현무, 주작, 청룡, 백호 벽화가 화려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관리 상태였다. 우리 영토에 있었다면 좀 더 보존이 잘 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많이 아쉬웠다.

 

4~5일차: 4일차와 5일차에는 백두산에 올랐다. 천지를 보기 전까지 백두산에 오르는 과정은 정말 힘들고 지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정상에 도착해 천지를 보는 순간 그 전까지의 고통은 싹 사라졌다. 그 경관을 눈과 마음에 가득히 담았다. 천지는 사진으로도, 영상으로도 눈으로 본 것만큼 온전히 담을 수 없었다.

 

   
▲ 윤동주 시인의 책들이 모여있는 책방
   
▲ 윤동주 시인 기념비

6~7일차: 윤동주 시인의 묘소에 방문해 참배를 했다. 용정에서 태어난 그는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 경찰에 검거 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젊은 나이로 옥사했다. 그의 무덤은 생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윤동주의 묘 바로 옆에는 그의 사촌 송몽규의 묘도 있다. 묘소에서의 참배를 마치자 희고 노란 날개를 가진 어여쁜 나비가 반겨왔다. 그 나비가 우리에게 윤동주 시인의 마음을 전하는 것 같았다.
다음날, 해림으로 이동해 김좌진 장군의 순국지를 찾았다. 민족을 위하여 온 힘을 다해 대항하셨다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찡하고 감사함으로 가득 채워졌다. 우리가 이렇게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김좌진 장군을 비롯한 많은 독립운동가들 덕분이 아닐까?


 

   
▲ 731 부대 전시관, 피실험자들이 야외실험 시 묶여있던 실험대

8일차: 일본인이 한국인에게 저질렀던 만행이 어느 정도였는지 정확히 체감하지 못한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이다. 나도, 우리 기행단도 ‘731 부대’ 전시관을 관람하지 못했더라면 일본군이 죄 없는 한국인을 얼마나 잔인한 수단으로 얼마나 많이 학살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었을 것이다. 731 부대는 이른바 ‘세균전 부대’로 전쟁포로 및 기타 구속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각종 세균실험과 약물실험을 자행한 부대라고 한다.

전시관을 둘러본 후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밀려왔다. 연구라는 명목으로 사람들을 고의로 세균에 감염시켜 생체실험을 저질렀던 모습을 보니 마음속에서 화가 솟구쳤다. 세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역사를 바로 알고 큰 깨달음을 얻었으면, 그리고 일본인들이 이 내용을 알고 성찰할 수 있기를 바랐다.

 

9~11일차: 중국에서 러시아로 국경을 버스로 통과하는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블라디보스토크의 한국교육원을 방문했다. 러시아 학생들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자주 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뻤다. 한국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 타국에서 노력하시는 한국인 원장님을 직접 만나 뵙고 말씀을 들어보니 존경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이번 인문학기행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한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었다. 꽉 막힌 교실에서 교과서만을 통해 알 수 있었던 문화재나 역사 이야기들이 실제 유적지에 방문해 보니 새로웠고 남달랐다. 체험의 소중함과 가치를 실감할 수 있었고, 독립운동가들의 노고와 애국심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던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이러한 기행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어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많은 기회를 얻었으면 한다. 나 또한, <밥매거진>에서의 연재를 통해 우리 청소년들이 역사에 대해 바로 알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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