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
1980년 광주를 위한 레퀴엠
충남 용남고등학교 3학년 이세영 기자  |  dltpdud03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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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호]
승인 2017.09.07  14:5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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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이 영화를 본지도 벌써 열흘이 되어간다. 영화를 보고 온 날 영화 감상 후기를 쓰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가. 그때의 나는 눈물로 눈이 퉁퉁 부어, 이 영화를 좀 더 차분한 심정으로 바라볼 수 없었을 것이다. 슬픈 영화를 보면 으레 그러하듯, 나 또한 당시에는 상당히 고조된 감정 상태를 가지고 있었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택시운전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진짜다. 이게 전부다. 다만 앞에 수식어가 하나 생략되어 있다. ‘1980년 5월, 광주로 간’ 택시운전사다. 현대사에 어느 정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연도와 월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영화는 5·18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다. 영화를 보면서 대단히 많은 것을 느꼈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지엽적인 것에서부터 핵심적인 것까지 상당히 많지만 지면의 한계 등을 고려해 선별적으로 이야기 해보려 한다.
 

초등학교 땐가, 중학교 땐가.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잔혹함과 폭력성과 함께, 마지막에 배우 이요원이 ‘우리를 잊지 말라’며 슬프게 읊조리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택시운전사>와 마찬가지로 너무나도 슬픈 영화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때의 나는 울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못했을지도.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때 눈물을 흘리지 않았는지 이상하다. 만약 지금 그 영화를 본다면 울 것 같다. 정말 서글프게.
 

고작 10살이었나, 아니면 11살이었나. 어쨌든 그 당시, 그런 비극의 역사가 눈앞에서 비쳐졌는데도 내가 울지 않았던 건 아마 잘 몰라서일 것이다. 그 비극이 영화에서조차 얼마나 축소되었는지(실제로 <화려한 휴가> 시사회 때 유가족들이 영화에서 다룬 폭력의 강도가 실제보다 너무 약하다고 말씀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알지 못했고, 그게 실제 역사였다는 점 역시 알지 못했다. 물론 지금은 안다. 그러니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이겠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화려한 휴가>는 철저히 그 당시 광주 사람들의 눈에서 서술된 영화다. 그에 비해 <택시운전사>는 처음부터 이방인의 시선에서 영화가 전개된다. 극 중 김만섭(송강호 분)은 서울의 택시운전사다. 계엄령 선포 당시 광주의 사정 따위는 알지 못한 채, 오로지 월세 10만원을 벌기 위해 독일인 기자를 데리고 광주에 입성한다. 서울인과 독일인. 두 사람 모두 당시 광주의 입장에서는 이방인이다. 그들은 당시 광주의 실상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 일은 여기 사람에게 맡기고.” 라는 황태술(유해진 분)의 대사도 이들을 이방인으로 규정짓는다.
 

만섭은 어리둥절하다. 뉴스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 눈앞에 펼쳐지고, 상식적이지 못한, 참혹하고 잔인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는 얼른 집에 돌아가 사랑하는, 혼자 있을 딸을 만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만섭은 이후 온갖 고초를 겪고, 광주에서 만난 사람들의 도움으로 마침내 딸과 집이 있는 서울로 돌아가게 되지만, 그들을 잊지 못해 결국 다시 광주로 돌아간다.
 

엄밀히 말해, 그 당시를 겪지 못한 모두가 5·18 민주화 운동에 있어 이방인이다. 우리는 그들이 겪었던 고통을 짐작만 할뿐, 정확히 알지 못하고 사실 이해도 어렵다. 감독은 ‘만섭’이라는, 관객들을 대표하는 이방인을 영화의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만섭’이 느꼈을 수많은 복잡한 감정들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는 이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사태를 전혀 알지 못하는 이방인이 사건을 바라보고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렇게 만들려는 것은 또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인가.
 

보고 온 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이 영화만 떠올리면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 시절, 힘없이 스러져야 했던 ‘재식’과 같은 수많은 청춘들…….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도 전에 죽어야만 했던 청춘들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가슴 아프다.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사람들의 죽음과 한 집안의 딸이자, 어머니이자, 아내였던 이들의 죽음……. 필시 다 표현해지 못했을 1980년 5월, 광주의 슬픔과 비통함은 잊히지 않고 가슴 속을 맴돈다. 이 영화가 모쪼록 그들을 위한 레퀴엠이 되기를. 부디 그곳에서는 평안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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