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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 지나가는 것들에 대하여] 소설 <단풍 드는 날>
인천세원고등학교 2학년 최희주 기자  |  a072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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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호]
승인 2017.11.08  15: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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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 지붕 아래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아갈 줄 알았다. 그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또 다시 32년째 그걸 생각만 하고 있다. 다시 32년째 그리워하고만 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리워하는 것 밖에 없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없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벌이다. 보지도 못하며, 만질 수도 없고, 눈을 맞추며 말할 수도 없고,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고 하지 못하는 게 너무 많다.

 

왜 이런 시련을 겪어야만 할까, 나는 하나도 잘못한 것이 없다. 그저 나라 간의 싸움에서 피난가다 가족과 헤어져 피해만 겪었을 뿐. 나라를 원망하며 수십 년째 그리워하고 있는 가운데, 가족을 만난 적은 있기야 있다. 하지만 스쳐가는 정도라 표현하는 게 더 맞을 수도 있겠다. 나에게는 그 짧은 만남이 잠시 스쳐가는 정도였다.

 

그렇게 스쳐가는 것이라 느낄 만큼 짧은 만남이었기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고, 그런 만남이라 마음이 아프고 또 아프고, 마음 한편에 응어리가 맺혀 꺼낼 수가 없다. 이 응어리를 언제쯤 꺼낼 수 있을까.

 

한국전쟁이 끝나고 1985년. 32년 만에 가족들을 처음 만났다. 지옥 같았던 32년이었다. 가족들을 보자마자 하염없이 울었다. 지옥 같았던 32년 때문이었을까, 아님 이렇게라도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안도감이었을까. 어찌되었든 처음 만난 날은 평생 잊을 수 없다. 부모님은 돌아가셔 가족 다 함께 만날 수 없었던 안타까움이 컸지만, 동생들을 통해서 부모님의 얘기를 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또, 내 사랑하는 동생들을 만날 수 있어서 그것 또한 다행이었다.

 

하지만 다행과 함께 안타까움과 슬픔이 쏜살같이 밀려왔다. 32년 만에 만난 내 동생들은 내가 기억하고 있었던 모습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자글자글한 주름들이 있었고, 다들 말라 있는 모습이었다. 마음이 아팠다. 죽을 듯이 가슴이 미어졌다. 32년이라는 오랜 세월, 그 세월 동안 내가 맛있는 밥 한 끼 해주지 못해서, 내 동생이 자라온 과정을 봐주지 못해서, 동생들이 가정을 꾸리는 과정을 함께 해주지 못해서. 그래서 더 그랬다.

 

동생들을 안아주며 “언니가, 누나가 미안하다. 미안하다. 보고 싶었다. 너무 보고 싶었다.”는 말밖에 못했다. 잠시 동안은 그 말만 반복해서 하였지만 시간이 지나 잘 지내고 있는지, 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자식들은 몇 명인지, 부모님 장례는 잘 치러드렸는지 등 궁금했었던, 말하고 싶었던 얘기들을 내뱉었다.

 

우리에겐 3박 4일의 시간이 주어졌다. 마지막 날, 이제 조금 여유를 가지고 다과를 즐기며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만남의 시간이 끝났다고 한다. 이젠 가야된다더라. 너무 화났다. 나라가 미웠다. 왜 짧게 시간을 주는지, 왜 더 많은 이야기를 못 나누게 하는지. 32년 만에 만난 우리, 옆 테이블의 모녀, 옆옆 테이블의 부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또 다시 주머니 속 손수건을 꺼내며 하염없이 울었다. ‘다음에 또 만나자’, ‘내년 추석 때 또 만나자’, ‘떡국 먹는 날 만나자’, ‘왜 시간을 조금 밖에 안주냐 너무 밉다’ 등 끊임없이 말을 내뱉었다. 또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가족들을 만날 수 없었다. 명단에서 누락이 되거나 동생들의 건강 상태가 악화되는 등 여러 이유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놓치고 말았다. 그렇게 또 다시 시간이 흘렀다. ‘내년 설에는 만나겠지, 내년 추석에는 만날 수 있겠지.’ 하면서 지내왔건만 재작년부터 만남의 발길은 끊기고 말았다. 기약 없는 만남, 기약 없는 이별이 더 심화되고 말았다.

 

올해는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동생들 만나면 밥 한 끼 먹여주고 싶었는데, 조카들 손에 용돈 쥐어주고 싶었는데. 뭐가 그렇게 만나기 어려운지, 얼굴 한 번 보기 참 힘들다. 말 한 번 나누기 정말 힘들다. 스쳐 지나가는 만남, 스쳐 지나가는 시간들, 스쳐 지나가는 행복의 순간들. 언제쯤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닐 수 있을까? 언제쯤 평생 머무를 수 있을까?

 

단풍 드는 날 함께 만났으면 좋겠다. 단풍 드는 날 같이 손잡고 축제에 가고, 남들처럼 가족사진 한 컷 찍고 한 동안 못 나누었던 얘기했으면 좋겠다. 그들은 우리의 이런 소박한 소원, 한 번쯤은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가족 잃은 슬픔, 보고 싶어도 만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슬픔. 그들은 모를 것이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얼마나 지옥 같은지.

 

내년에는 만나고 싶다. 내년에는 나라 관계가 좋아져 장시간 동안 가족들을 만나고 싶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아니길 바란다. 그렇게, 그렇게 자주 자주 만나다 보면 언젠가 같이 살 수 있겠지. 언젠가 하나가 되는 날이 오겠지. 간절한 바람으로 동생들한테 말 한마디 건네야겠다.

 

“동생들아, 우리의 만남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만남이 아니었기를. 스쳐 지나가는 시간이 아니었기를. 이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우리 서로, 하나가 되는 데 보탬이 되어주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자. 다음에 만날 때까지 아프지 말아줘, 건강하고 또 건강해야 해. 다음에 만나면 그 땐 울지 않고 환하게 웃으며 맞이할게. 서로의 입 꼬리가 귀에 걸릴 듯이 웃으며 그렇게 맞이하자. 우리 단풍이 물드는 날 만나자, 단풍 드는 날 사진 찍자. 모든 것을 다 하자, 단풍 드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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