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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 지나가는 것들에 대하여] 소설 <스쳐 지나가는 것>
동덕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7학번 이세령 기자  |  aniseryung10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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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호]
승인 2017.11.08  15: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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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로 구름이 스쳐 지나간다.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싱그러운 웃음꽃을 한가득 피운 학생들이 정문을 유유히 빠져나간다. 저때의 나도 세상 누구보다 예쁜 웃음꽃을 피웠었는데. 학생 무리가 교문을 빠져나가기만을 기다린 지 얼마나 지났을까, 쭈그린 다리가 슬슬 저려오기 시작했다.

 

교문을 나오는 발걸음이 뜸해졌을 때 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괜스레 리본을 한 번 만지고 교문 안으로 향했다. 교문 뒤에서 어슬렁거리던 경비아저씨가 처음으로 나를 맞는다. 경비아저씨를 쓰윽 훑어본다. 재작년에 조퇴하려고 교문을 나서던 나에게 선생님께 허락은 받고 집에 가는 거냐며 멋대로 오해한 채 나를 훈계하시던 경비아저씨였다. 그때만 해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나를 나무라던 경비아저씨가 밉고 얄미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경비아저씨는 경비아저씨의 업무를 수행하신 매우 훌륭한 분이셨다.

 

학교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이 없었다. 하지만, 이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반가웠다. 여기서 동아리 면접 보다가 떨어졌었는데. 여기 거울 앞에서 애들이랑 사진 많이 찍었었는데. 급식을 빨리 먹으려고 뛰어가던 애들 속 내 모습이 그려졌다. 학창시절의 나를 그리워하다니. 작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학창시절의 나는 하루빨리 대학교에 합격하고 입학해 하루빨리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었다. 이 때 묻고 지겨운 교복과 운동화 대신에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빛나는 구두를 신으며 당당하게 걸어 다니고 싶었다. 그러던 내가 지금은 교복이 입고 싶어 오히려 교복을 찾아 입고 있다니. 내가 학교 곳곳을 돌 때마다 학교 곳곳에 추억으로 가득 찬 방울들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평소에 방울 터트리는 걸 좋아하는 나이지만 오늘 하루만은 간질간질한 손도 꾸욱 참고 방울들을 터드리고 싶지 않았다. 아니, 터트리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오히려 방울들에게 바람을 불어줘 더욱 두둥실 떠오르게 하고 싶었다.

 

교무실이 보였다. 교무실 문에 달린 조그마한 창문을 통해 교무실 안을 훑어보았다. 그러나 작년 담임선생님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작년 담임선생님 자리에는 웬 젊은 여자 선생이 대신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선생에게선 내 전 담임선생님 특유의 푸근하고 폭식한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에게 달려가면 “어! 애물단지 왔나? 오늘은 또 무슨 애기를 하려고 오셨나?”라고 반겨주기 보다는 날카로운 눈빛을 한없이 쏘아붙일 것만 같았다. 그래도 그 옆자리에는 나에게 유쾌함을 가르쳐주시던 국어선생님이, 그 앞자리에는 정을 알려주시던 수학선생님이 계셨다. 그들처럼 우리 담임선생님도 오늘까지 이 학교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학교를 나와 트랙 옆에 위치한 나무 벤치에 앉았다. 쌀쌀한 가을바람이 나를 감싸 안았다. 지난 3년 동안 이 보온 기능 하나 없는 교복으로 어떻게 추위를 버텼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누군가가 나에게 넌 이 학교를 졸업하면 그 교복마저 그리워할 거야라고 귀띔만 해줬어도 나는 눈바람이 부는 날에도 이 교복만을 입었을 것 같다.

 

어른들은 말한다. 학생 때가 좋을 때라고. 다른 어느 학생들처럼 고등학생의 나는 그 말에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지금 어른의 나는 이해한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간 나는 그리워하겠지. 왜 이때를 더 즐기지 못했냐며 내 자신을 자책하겠지. 우리는 비로소 시간이 지나서야 스쳐 지나가는 것들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그래서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더욱 소중한 게 느껴지는 걸까?

 

멀리서 경제선생님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작년에는 3학년 부장님으로 계시면서 학생들 못지않게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나에게도 입시 조언을 아끼시지 않으셨던 분이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선생님이랑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선생님!”
 

“어, 이게 누구더라.”
 

경제선생님이 머리를 긁적이셨다.
 

“벌써 잊으신 건 아니시겠죠? 저 작년 3학년 8반 김서래요!”
 

“아, 김서래! 서래가 여기에 웬일이니? 교복도 입었네?”
 

“학교가 그리워서 한번 와봤어요.”
 

이제야 교복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멋쩍게 웃었다.
 

“그래, 학교는 잘 다니고?”
 

“음, 뭐. 그냥저냥 다니고 있어요. 대학교 현실이 환상과는 많이 달라 조금 당황했지만.”
 

“고등학교 때가 좋았지?”
 

현재 내 마음을 정확히 관통한 한 마디였다.
 

“네.”
 

“인생이 다 그렇지. 인생이 다 그렇게 흘러가는 거지.”
 

선생님이 웃으셨다.
 

“뭐, 인생이 다 스쳐 지나가는 거지. 하지만, 스쳐 지나가는 것은 말 그대로 스쳐 지나가는 것뿐이니 그것은 그것대로 두는 게 좋아. 너무 스쳐 지나가는 것에 연연하지 않길 바란다.”
 

발 아래로 낙엽이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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