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세계승재의 제주, 어디까지 아니?
승재의 "제주, 어디까지 아니?" #2제주 4·3 70주년을 맞으며
제주중앙고등학교 2학년 부승재 기자  |  ssopp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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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호]
승인 2018.04.05  16:5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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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돈 워리, 돈 워리! 아이 베스트 드라이버 돈 워리 광주.”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택시운전사로 분한 배우 송강호(만섭 역)가 독일기자 피터에게 한 말이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소재인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을 모르는 이는 이제 거의 없다. <택시운전사> 이전에도 <꽃잎>, <오래된 정원>, <화려한 휴가> 등의 영화에서도 광주 민주화운동은 다뤄졌다.

하지만 천혜의 땅 우리나라 남쪽 제주도에서도 1980년의 광주처럼 정부의 유혈진압이 있었던 것을, 그 참상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바로 ‘제주 4·3’ 사건이다. 2013년에 제주 4·3을 소재로 한 영화 <지슬>이 개봉되기도 했지만 아직 제주를 찾는 사람들은 제주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운 자연만을 떠올린다. 이번호에서는 제주 4·3과 이 사건과 관련된 곳들을 알아본다.



 
정부의 유혈진압, 제주에도 있었다
제주 4·3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역사 중 하나로 대한민국 역사상 6·25 다음으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제주 4·3으로 인한 정확한 피해자 규모는 아직도 집계되지 않았지만 대략 2만 5천 명~3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엄청난 수다.
 

   
▲ 너븐숭이 4·3 기념관관 내부모습



제주 4·3이 뭐우꽈(제주 4·3이 무엇입니까)
제2차 세계대전 말, 동북아시아의 요충지였던 제주는 미군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한 일본의 전략적 기지였다. 광복 후 제주는 해방의 기쁨에 차 있었으나 점차 무너진다. 6만 여 명의 제주 주민들의 일시 귀환으로 인한 실업난, 콜레라, 흉년, 미곡정책의 실패 등이 겹쳤고 일제에 협력했던 경찰들은 미군정 하에서도 그들의 지위를 유지한 채 사리를 채우는 부정행위를 일삼았다. 미군정의 무능함에 대한 불만이 서서히 확산되는 분위기였다.

여기에 1947년 삼일절 기념식에서 경찰이 탄 말에 어린 아이가 치이는 일이 벌어진다. 그대로 가는 경찰을 본 군중들이 몰려들었고 습격으로 오인한 경찰은 이들을 향해 발포해 6명이 사망한다. 광복 이후 남한에서 단독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반대하던 남조선노동당은 이런 들끓는 민심을 이끌고 1948년 4월 3일 새벽 경찰서를 급습한다. 정부는 제주도에 군병력을 보냈고,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통행금지가 전면 해제될 때까지 진압 과정에서 많은 죄 없는 일반 주민들이 희생당한다.
 

   
▲ 제주 4·3 평화공원 기념관 행방불명자 표석



다랑쉬 굴의 눈물
제주 4·3의 주민 학살은 ‘해안선에서 5km 이상 들어간 중산간지대 통행하는 자를 폭도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포고령이 떨어지면서다. 진압군은 중산간마을 주민들을 해변마을로 이동시켜 무장대의 근거지를 없애고자 하였다.

산간벽지에 살던 사람들은 내려오지 못해 숨어 지내기도 했고, 진압군은 이주 명령이 전해지기도 전에 마을 덮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며 진압군은 ‘업적’을 세우기 위해 산중에 은신한 주민들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총살했고 제주도민의 희생은 커져갔다.

다랑쉬 오름의 다랑쉬 굴에 숨어 있던 사람들은 이때 희생됐다. 진압군은 굴 입구에 불을 피워 이들을 질식시켰다. 희생자 중에는 아홉 살난 어린이도 있었고, 그들이 사용한 솥, 항아리 등도 발견됐다. 다랑쉬 굴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민간이었다는 이야기다. 이는 4·3사건의 참혹함과 그 진상규명의 시급성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흔적 없이 사라진 마을, 곤을동
제주 4·3이 일어나기 전 곤을동은 제주시 화북1동 서쪽 바닷가에 있던 마을이었다.

   
▲ 제주 4·3 피해로 없어진 마을, 곤을동 마을 터

60여 가구가 있던 곤을동 마을이 전부 불에 타 사라진 마을이 된 건 1949년 1월 4일과 1월 5일 이틀 동안의 일이었다. 중산간마을이 아닌 해변마을이 초토화가 된 건 무장대 중 한 명이 곤을동으로 도망가는 것이 목격되어서이다. 군대는 폭도동네로 지목된 곤을동 마을을 포위하고 주민들을 학살한 후 마을을 불태웠다. 인적은 끊겼고, 제주시 인근 해안마을이었던 곤을동마을은 폐동되어 지도에서 사라진 마을이 되었다.

   
▲ 제주 4.3 피해로 없어진 마을, 곤을동

잃어버린 마을의 상징이 된 곤을동은 집터, 올레(집과 마을길을 연결해 주는 작은 길) 등만이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제주 4·3의 아픔을 말해주고 있다. 제주 4·3사건 진상보고서에 의하면 제주 4·3으로 인해 흔적 없이 사라진 마을은 곤을동 말고도 ‘어우눌’, ‘리생이’, ‘드르구릉’ 등 84곳이라 한다.



 

   
▲ 영화 지슬 포스터

영화 <지슬>
영화 <지슬>은 제주 4·3을 다루며 많은 제주도민들과 국민들에게 근현대사의 아픔을 재조명하며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왔다. ‘지슬’은 감자를 뜻하는 제주방언으로, 영화에서 상징적인 소재로 쓰인다. 1948년 11월. 제주섬 사람들은 ‘해안선 5km 밖 모든 사람을 폭도로 여긴다’는 말만 듣고 영문도 모른 채 산 속으로 피신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 소설 순이삼촌

제주의 비극을 정면으로 다룬 첫 작품, 소설 「순이 삼촌」
예전에는 제주 4·3사건은 함부로 입에 담아서도 활자화해서도 안 되는 금기사항 중 하나였다. 그런데 비극적 참상이 발생한 지 얼추 반세기가 지날 때쯤, 제주출신의 작가 현기영이 최초로 제주 4·3의 비극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 「순이 삼촌」을 세상에 내놓으며 그 금기의 벽을 무너뜨렸다. 「순이 삼촌」은 『창작과 비평』 1978년 가을호에 발표되었다. 하지만 작품 발표이후에 현기영은 경찰에 연행되고 소설 「순이 삼촌」은 판매금지 조치를 당하는 시련을 겪었다.
 



제주 4·3, 70주년을 맞으며
제주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어느 정도 일단락되어 가고 있지만 아직도 제주도민들에겐 큰 아픔이다. 또,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아서 안타깝다. 제주 4·3을 겪은 피해자 분들과 희생자 가족 분들이 아직도 생존하기에 제주 4·3은 철저히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제주 4·3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너븐숭이 4·3 기념관’과 ‘제주 4·3 평화공원 기념관’에 가보자. 너븐숭이 4·3 기념관은 소설 「순이 삼촌」의 배경이 되기도 한 북촌리 주민 443명을 포함한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기념관이다. 제주 4·3 평화공원 기념관은 다랑쉬굴 사건을 비롯해 제주 4·3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공간이다.
 

너븐숭이 4·3 기념관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북촌3길
전화: 064-783-4303

   
▲ 너븐숭이 4·3 기념관

 

- 제주 4·3 평화공원 기념관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명림로 430
전화: 064-723-4344

   
▲ 제주 4·3 평화공원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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